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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 성균관대학교 _ 하마비, 탕평비각, 서울문묘, 성균관

김똘뱅이투어 2023. 10. 22.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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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 성균관대학교 _ 하마비, 탕평비각, 서울문묘, 성균관
 
 
 


고려시대 말, 조선시대에 관리양성을 위한 최고 국립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
그리고 성균관대학교 입구에 위치한 영조의 정책과 관련된 탕평비각을 방문하기로 했어요.
 

 

 
성균관대학교에 도착!!!
근처에 창경궁, 어린이과학관 등 가볼만한 곳이 많은편이예요.
동선을 잡아 당일 나들이코스로 둘러보면 좋을 것 같아요 :D
 
김똘뱅이는 탕평비각 - 성균관 - 창경궁 동선으로 다녀봤어요.
 

 

 

 

하마비와 탕평비각

비각 안의 탕평비는 1742년(영조 18)에 세운 것이다. 영조는 지나친 당쟁의 폐를 막기 위해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관리를 뽑는 탕평책을 펼쳤고, 이 비를 세워 그 의미를 널리 알렸다. 

영조가 직접 쓴 (周而弗比 乃君子之公心 比而弗周  寔小人之私意) 비문은 "두루 사귀어 편당을 짓지 않는 것이 군자의 마음이고, 편을 가리고 두루 사귀지 못하는 것이 소인의 마음이다"라는 뜻이다.

비각의 오른쪽 하마비에 새겨진 (大小人員皆下馬) 비문은 "높고 낮은 모든 사람은 이곳에서부터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종묘나 궁권의 문 앞 등에도 하마비가 세워졌다.

 

 영조 때, 탕평정책에 동의하는 인물(탕평파)을 등용하여 정국을 운영했다고 해요.
노론 강경파를 제거하고, 소론 ·남인 온건파를 등용했어요.
영조의 탕평 의지를 알리기 위해 성균관 앞에 세운 탕평비

<keyword> 영조의 업적
1. 탕평책 실시 - 탕평비 건립
2. 균역법 실시 - 군포 2필 -> 1필로 축소
3. 속대전, 동국문헌비고 편찬
4. 신문고 제도 부활
5. 청계천 준설

 

 
아들래미 사진포즈는 항상 똑같은 느낌!!!
어떤 캐릭터의 흉내를 내는건데. .  뭔지 가물가물하네요.
 

 

 
우선 김똘뱅이와 아들래미가 함께 돌아볼 
서울 문묘와 성균관 구조와 내용을 살펴보았어요.
 
경주향교와 비슷한 구조의 성균관의 모습을 보며, 
아들래미에게도 경주향교를 기억하며 들어가서 보자고 이야기했어요.
 

서울 문묘와 성균관

문묘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을 말하며, 성균관은 나라의 인재를 길러내는 조선시대의 으뜸가는 교육기관이다. 이곳은 유교의 중요한 사당인 동시에 유학을 가르치는 최고 학교였다.

서울 문묘와 성균관은 1398년(태조 7)에 처음 세워졌으나 화재와 전쟁으로 여러 번 고쳐 지었고, 1869년(고종 6)에 크게 수리되어 현재에 이른다.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와 서무를 포함하는 영역이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제사 공간이며, 명륜당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는 영역이 교육 공간이다. 명륜당 동쪽으로는 학생들을 위한 식당인 진사식당을 비롯한 관리를 위한 부속 시설들이 있다. 

대성전과 명륜당의 관계를 바탕으로 지방 향교를 포함한 문묘에는 몇 가지 형식이 있는데, 서울 문묘는 대성전을 앞에 두고 명륜당을 뒤에 두는 이른바 전묘후학 형식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명륜당은 성균관 유생들이 공부를 하던 공간이랍니다.
큰 특징 중 하나는 넓은 마루 공간이예요.
강의와 토론이 열렸을 넓은 공간.
 

명륜당과 그 주변

명륜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있는 영역이 성균관의 교육 공간이다. 1398년(태조 7)에 설립되어 왕세자까지 교육한 조선시대의 최고 학부였으며, 때때로 과거 시험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명륜은 인간 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이며, 현판 글씨는 1606년(선조 39)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쓴 것이라고 전해진다. 명륜당은 주로 학문을 익히고 연구하는 공간으로, 3동을 하나로 연결해 지었다. 가운데 건물은 마루로 되어 있고, 그 양쪽 날개채에 선생들이 거처할 수 있는 온돌방이 있다.

학생들이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는 20칸의 긴 건물에 앞뒤로 툇마루를 설치한 독특한 형식이다. 명륜당 뒤쪽에 있는 존경각은 도서관이고, 육일각은 활과 화살을 보관하는 장소였는데, 공자의 가름침에 따라 선비들이 문무를 겸비하기 위해 수련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마당에 있는 은행나무는 1519년(중종 14)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윤탁이 심은 것이라고 전해지는데, 공자가 은행나무 밑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를 따른 것이라 한다.

 

 

성균관 명륜당 마당에는 SNS 포토존으로 유명한 은행나무가 자리잡고 있어요.
10월말 ~ 11월초가 되면 단풍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죠.
여름에 방문해서 노오란 은행나무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임진왜란 이후 심은 나무로 추측되는 500여년 정도 된 은행나무를 보며 눈이 땡글해졌어요.
 
다음에는 가을에 노오란 빛을 새겨보자며. . .
 

 
대성전은 공자와 선현들의 제사를 모시는 공간이예요.
대성전은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주변만 둘러보는걸로 만족했어요.
 
은행나무까지 몇 발자국되는지 체크해보는 아들래미
노오랗게 물든 성균관의 모습도 남겨봐야하는데. . .
2년전 사진을 찾아봐야한다는. . ㅠ

 

 

 
집으로 향하는 길,
관계자분께서 이쪽으로도 보고 가라고 안내해주시더라구요.
 
잘 기억은 안나지만, 동재의 반대쪽 방향도 볼 수 있었던 것 같고,
식당으로 이용되었던 진사식당도 볼 수 있었어요.
사진으로 남긴 곳은 어딘지 정확하게 기억이 안나지만 살포시 올려봅니다.

 

 
궁궐야행을 위해 창경궁으로 향하는 아들래미의 모습
피곤할텐데도 불구하고 잘 걸어다니고, 신나하는 모습이 고맙기만 합니다.
김똘뱅이는 한번 나오면 집에 빨리 들어가기 싫어서 아들래미 데리고 주구장창 걸어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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