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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투어/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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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똘뱅이투어 2023. 10. 1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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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탬프투어 도장 다 받아야한다는 아들래미

2군데는 이미 경주시내를 벗어나서 받을 수 없지만,

양동마을도 찍었고, 옥산서원까지는 스탬프투어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방문했어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_ 옥산서원

서원은 조선 사회에 성리학이 정착하면서 사림세력이 지방에 설립한 사립 고등교육기관이다. 서원은 성리학을 연구하며 인재를 교육하는 강당이 있는 강학 공간, 존경하는 스승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이 있는 제향 공간, 그리고 유생들이 시를 짓고 토론도 벌이며 휴식하고 교류하는 유식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주변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인격을 갈고 닦는 인성교육에 중심을 두었다.

조선시대 서원 중에서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의 9개 서원이 2019년 7월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이란 이름으로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되었다. 이들은 한국 서원의 총체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한국의 서원'은 문화적 전통, 또는 현존하거나 소멸된 문명과 관계되면서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한 증거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세계유산 등재기준을 인정받아 세계유산이 되었다.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에 걸쳐 건립된 이들 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이 교육과 사회활동에 널리 퍼져있었다는 명확한 증거이다. 또 이 서원들은 전국 각지의 지식인들이 제향을 올리고 강학을 하여 성리학 교육체계를 만들고, 그것에 꼭 맞는 건물을 지어 성리학 가치가 담긴 독특한 역사 전통을 만들어 가는 공간이었다.

 

우리가 방문해보았던 서원이 어디인지 체크도 해보았답니다.

 

병산서원, 도산서원

이번에 옥산서원까지. . .

 

아들래미가 안가본 곳도 다 가보자며 이야기해서 놀랬어요. 

 

 

옥산서원 유물전시관에서 거닐다보면 산책로가 잘 되어 있어요.

왼쪽으로는 개울도 있는데, 중간중간 징검다리가 있어서 건너고 싶어했던 아들래미

여름에 계곡에서 물놀이하기에 딱 좋을 것 같았어요~

 

푸릇푸릇한 초록색과 자연을 한가득 눈에 담았던 날이네요.

 

 

2010년 8월 1일 양동마을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19년 7월 10일 '한국의 서원'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재차 등재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2관왕이 된 옥산서원이예요.

 

경주 시내에서 벗어나야 갈 수 있는 옥산서원인데요.

양동마을을 가는 동선이 있다면 꼭 들려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문인 역락문을 넘어오면, 자그마한 물길을 건너야하는 구조가 독특했어요.

왕릉에 위치한 금천교같은 느낌이랄까요??

 

그 뒤로 무변루가 위치해 있어요.

옥산서원의 누마루 '무변루'

누마루를 처음 도입한 건물이라고 하는데,

보통 마루가 바깥으로 향해서 풍경을 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는데,

여기는 마루가 안쪽을 향해서 지어져 있어서 신기했어요.

 

'끝이 없는 누각' 이라는 뜻을 지닌 무변루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라고 해요.

 

경주 옥산서원

옥산서원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1491~1553)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언적의 학설이 이황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의 중요한 성리학설이 되었으며 조선 성리학의 한 특징을 이루었다. 선조 5년(1572)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지방 유림의 뜻에 따라 이 서원을 처음 세웠고, 이듬해에 옥산서원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서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유지되었던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이 서원은 초기 건축물이면서도 질서정연한 형식을 갖추었다. 정문인 역락문을 들어서면 강학 공간으로 무변루와 구인당, 동재, 서재가 있고, 구인당 뒤편에 제향 공간으로 이언적의 위패를 모신 체인묘가 있다. 동재 오른쪽의 여러 건물들은 서원의 살림을 맡아보던 곳이고 그 뒤편 건물은 목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현판의 글씨는 아계 이산해와 추사 김정희가 썼다.

이 서원은 2010년 7월에 '한국의 역사마을:하회와 양동'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며, 2019년 7월에는 서원 8곳과 함께 '한국의 서원'으로 세계유산에 다시 등재되었다.

 

 

김똘뱅이 가족이 방문한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는데요.

운이 좋게도 옥산서원에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아이들이 서당체험을 할 수 있는 붓글씨 체험, 선비옷 입기 체험 같은 것이었어요.

 

선비옷을 입고 계신 어르신들께서 수정과와 떡을 나누어 주셨어요.

따끈따끈한 떡과 시원한 수정과의 조화

정말 맛나게 먹었어요 :D

감사합니다^^

 

 

정면으로 강의와 토론이 열렸던 공간인 강당, 구인당이 위치해있어요.

정면에 걸려있는 옥산서원 현판은 추사 김정희 글씨라고 해요.

안쪽에 위치한 구인당 현판은 한석봉 글씨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시대 진흥왕순수비석 오른쪽에도

추가 김정희 글씨가 새겨져 있으니 사진으로 비교해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옥산서원에서는 추가 김정희, 한석봉, 아계 이산해, 퇴계 이황 등 

조선시대 유명한 명필가들의 글씨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예요.

 

 

아들래미랑 아빠랑 추사 김정희 글씨체인 옥산서원 현판 아래에서. . .

 

 

옥산서원 현판 글씨체를 보는 재미도 솔솔해요.

바깥에서 바라보는 옥산서원 현판은 추사 김정희 글씨

안쪽에서 바라보는 옥산서원 현판은 아계 이산해 글씨

 

개인적으로 아계 이산해 글씨체가 더 마음에 드는 김똘뱅이입니다.

 

 

강당 뒤에 위치한 사당이예요.

내부로 들어갈 수 없었지만,

제사를 지내는 공간과 준비를 하는 공간을 돌아볼 수 있었어요.

 

 

독락당이 궁금해서 올라가는 길

갑자기 비가 갑자기 많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꾸물꾸물한 하늘에서 추적추적 비가 내리긴 했지만. . .

산을 오르기엔 위험하게 느껴져 후다다닥 내려왔답니다.

그랬더니 그친 비. . 이건 뭐지?!

 

 

옥산서원 옆 자계천 한가운데 너럭바위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머물던 이언적은 이 바위를 세심대라고 이름 붙였다고 해요.

세심대는 용추에서 떨어지는 물로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구하는 곳이라는 뜻인데요.

 

바위에 가운데 새긴 세심대라는 글씨는 퇴계 이황이 썼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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