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똘뱅이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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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투어/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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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똘뱅이투어 2023. 10. 8.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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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벌레차에서 내려 어디를 가볼건지 의논하다가

비달벌레차를 타고 둘러보았던 곳을 직접 걸어서 다녀보기로 했어요.

전체적인 이야기를 들었다면, 직접 둘러보면서 세세하게 살펴보기 위해서요^^

 

 

 

<keyword> 선덕여왕

▶ 황룡사 9층 목탑

▶ 분황사 모전석탑

▶ 첨성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첨성대예요.


첨성대는 신라 최초의 여왕이인 선덕여왕 때 세워졌어요.

정확하게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옛 기록을 보면 하늘을 관찰했다는 관문관측대라는걸 짐작할 수 있어요.

 

경주 첨성대 _ 국보 제31호

첨성대는 동양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이다.
「삼국유사」의 '지기삼사'를 참고하면 신라 선덕여왕(632~647 재위)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사회에서 하늘의 움직임을 살피는 천문 관측은 국가의 길흉을 점치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큰 관심사였다.

첨성대는 다듬은 돌을 받침대 위에 27단으로 원통형으로 쌓아 올렸는데, 아래쪽이 부르다가 위로 갈수록 점차 수직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위에 긴 돌을 맞물려 우물정井자 모양을 얹었다. 
안쪽은 12단까지 자갈과 흙으로 채우고 그 위로는 비어 있으며, 13단과 15단 사이에 정남향으로 창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람이 가운데로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했다'는 기록이 있어 첨성대의 기능을 알 수 있다.

첨성대를 멀리서 보면 정井자형의 우물이 하늘을 향해 솟은 모습이어서 의례 상징물 혹은 기념비적 건축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경주 첨성대 안내문

 

첨성대는 무려 1400여년이 지났는데도, 세워진 그대로의 모습이예요.

역사해설가분이 체험학습 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명하는걸 들었는데,

경주지진 이후에 첨성대가 기울어져 있는 상태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우리나라에 크고 작은 지진들이 빈번해지고 있는 가운데,

흔들림없이 피해가 없어 선조들의 지혜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진에도 큰 피해가 없었던 첨성대에는 특별한 과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요.

첨성대가 1400여년전에 만들어진 구조물이지만, 내진설계가 적용돼 있다는 점이죠!!

그 비밀은 바로 내부의 흙이래요.

첨성대를 이루는 돌을 내부의 흙이 꽉 움켜쥐고 있어 첨성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는 것!!

 

 

앞에서 첨성대를 살펴보면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것 같지만,

옆에서 살펴보니 살포시 기울어져 있어, 피사의 사탑처럼 되는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우리나라의 문화재가 오래 유지되고, 후손들에게도 물려줄 수 있길 바래봅니다.

 

 

 

 

흐렸던 날씨가 햇살 가득한 맑은 날씨로 변하고 있었어요.

아이들과 산책하며 계림으로 향했답니다.

 

월성과 첨성대 사이에 위치한 계림은 들어서는 순간 수백년 이상 된 고목들로 풍성한 숲처럼 보여요.

계림은 김알지 탄생 신화와 관련이 있는 장소인데,

아들래미에게 엄마의 조상이라고 이야기했더니,

자기가 성을 바꿔 김OO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아이고~ 두야~!!

 

계림에는 느티나무, 팽나무, 왕버들 등 고목이 울창하게 있는데,

그 중에서도 회화나무 그루터가 눈에 띄었어요.

회화나무가 사람이 사는 집에 많이 심은 것은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래요.

 

 

경주 계림 _ 사적 제19호

이 숲은 첨성대와 월성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경주 김씨의 시조 알지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 탈해왕 때 호공이 이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가까이 가 보니 나뭇가지에 금궤가 빛을 내며 걸려 있었다.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왕이 몸소 숲에 가서 금궤를 내렸다. 뚜껑을 열자 궤 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하여 성을 김, 이름을 알지라 하고, 본래 시림, 구림이라 하던 이 숲을 계림으로 부르게 되었다.

경내의 비는 조선 순조 3년에 세워진 것으로 김알지 탄생에 관한 기록이 새져겨 있다.

- 경주 계림 안내문

 

 

 

계림에서 경주향교로 향하는 곳에 위치한 내물왕릉

내물왕은 김씨 왕위 세습을 확립하고, '마립간' 칭호를 사용했던 왕이예요.

무엇보다 왜의 침입 때,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도움을 받아 왜를 격퇴하였는데,

경주 호우총에서 발견된 고구려 청동그릇인 호우명그릇에서 광개토대왕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어요.

이를 통해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답니다.

 

<keyword> 신라 내물왕

▶ 김씨의 왕위 세습 확립

▶ 왕호를 '이사금'에서 '마립간'으로 변경

▶ 광개토대왕의 도움을 받아 왜의 침입 격퇴 → 호우명그릇

 

경주 내물왕릉 _ 사적 제188호

이 능은 신라 제17대 내물왕(356~402 재위)을 모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내물왕은 첫 김씨 왕이었던 미추왕의 조카이다. 석씨인 흘해왕이 아들없이 세상을 뜨자 내물왕이 그 뒤를 이었다.
이로부터 제52대 효공왕까지 김씨가 신라의 왕위를 이었다.
재위 기간에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한편, 여러 차례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는 등 외교와 국방에 힘썼다.

「삼국유사」에는 '내물왕릉이 첨성대 서남쪽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능은 월성의 서북쪽 계림 속 평지에 있다. 무덤 아래쪽에 둘레돌로 추정되는 자연석 일부가 겉으로 드러나 있다. 규모가 작고 둘레돌이 무열왕릉과 비슷한 점 때문에 7세기 후반에 축조된 무덤으로 보기도 한다.

- 경주 내물왕릉 안내문

 

아이들은 내물왕보다는 진흥왕, 김유신장군, 무열왕, 문무왕에 관심이 많네요.

그래도 중요한건 알고 넘어가자!!!

 

내물왕릉 앞에서 아이들 기념샷 필수!!!

다녀오고 나서도 기억을 못할 때가 있거든요.

사진을 찾아 보여주면 기억하더라구요~^^

 

 

 

 

계림, 내물왕릉을 지나 방문한 곳은 바로 경주향교

사진 찍기 싫어하는 남자아이들을 꼬드기는 방법은 태권도.

둘 다 품새를 알아서 태권도 품새를 보여달라고 하며 움직이는걸 찍어봅니다.

 

경주향교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화장실

생각보다 오래 걷게되는데, 항상 경주향교 근처에서 용무가 생기네요 >ㅁ< /

 

경주향교 _ 경상북도 유형문화제 제191호

경주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국가교육기관입니다.

이 자리에는 신라 최고 중앙교육기관인 국학이 신문왕 2년(682)에 처음으로 세워졌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성종 6년(987)에 지방교육기관인 학원을 설치하고, 성종 11년(992)에 시설을 정비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향교로 이어졌는데 성종 23년(1492)에 문묘와 성균관의 배치형식을 따라 다시 지은 현재와 같은 건물배치는 향교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 33년(1600)에 대성전을 비롯해 제사를 올리는 제향공간을 다시 지었고, 광해군 6년(1614)에 명륜당 동과 같은 학문을 닦는 강학공간을 고쳐 지었습니다.
광복 후에는 학교의 임시 교사로 활용되었으며 1999년부터는 사회교육원이 개설되어 강학의 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건물의 앞쪽에 있는 대성전과 동무, 서무는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곳입니다, 뒤쪽에는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시설인 동재, 서재가 있습니다. 교생의 정원은 90인이었으며, 경서와 시문을 위주로 가르쳤습니다. 영남에서 가장 규모가 큰 향교로 서울 문묘와 같이 다수의 위패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 경주향교 안내문

 

 

김똘뱅이 가족끼리 경주여행했을 때, 마침 제사가 있었던 날이었나봐요.

여기에서 제사를 준비하시던 분들께서 경주향교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셨어요.

 

성균관에 있는 명륜당과 대성전처럼

경주향교에서 제사의 기능전 교육의 기능을 했다고 하네요.

신라 신문왕 때 설치한 국학이 계속 이어져 온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요.

 

사진에는 없지만, 앞에 위치한 우물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는데. . .

향교가 지어지기 전부터 있었다는 우물

원효대사와 요석공주가 설총을 낳은 요석궁이 바로 이곳이라고요?!

여기에서 태어난 설총이 이 우물물을 마시고 대학자가 되었다하여 '총명수'라고 부른대요.

경주향교 우물 한번 마셔봐야하는데. . 아쉽군요.

 

 

(오른쪽)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의 모습이예요.

(왼쪽)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던 신삼문이예요.

기록에 의하면, 대성전이 중건되는 1602년에 함께 중건되었다고 해요.

 

신삼문

정면 3칸, 측면 2칸의 3량가 맞배집으로 여러 부재들의 가공방식과 양식에서 고식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하부의 신방목과 신방석은 신라시대의 수법이 그대로 남이 있는 것으로 보여 매우 주목되는 부분이다.

 

 

교촌마을을 둘러보며 최부자집도 방문했었는데. . .

사진 남기는건 실패했어요. ㅠ0ㅠ

아들래미 사진 찍지 말라며 어찌나 방방거리던지. . .

 

교촌마을에서 교촌치킨 먹을 수 있냐는 아들래미 말에 어이가 없어서. . .

달래고 달래어 기념품 하나 사서 조용히 움직여봅니다.

 

 

 

교촌마을을 지나 월정교 방향으로 가보았어요.

대구팀을 기다리다가 아들래미와 둘이서 방문했었는데 또 왔다며 투덜투덜

그래도 동생이랑은 처음 온거니깐 기분좋게 구경하자며 이야기하는 애미 속은 터집니다.

 

월정교는 낮에 보는 것보다 밤에 보는 풍경이 더 멋있는 것 같아요~^^

 

 

월정교 입구에서 경사가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만나볼 수 있는 공간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야기가 만화형식으로 남겨져 있어요.

월정교에 얽힌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이야기 궁금하시면 계단을 올라가보세요^^

 

경주에 있는 유물들을 시대별로 정리해놓은 스크린도 있어 볼거리가 생각보다 많아요.

경사가 가파른 계단만 이겨낸다면야 도전!!!

 

 

월정교에서도 역사해설가분께서 어르신들 모시고 설명하시는거예요.

옆에서 귀동냥하듯이 들었던 이야기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설화였고,

뒤쪽으로 바라보니 월성이 보이는 것과 현재 복원중인 월성에 대해서도 들었어요.

 

다음에는 역사투어로 전문역사해설가분 동행하는 패키지여행을 계획해야겠어요.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월성에 위치한 석빙고예요.

경주에도 석빙고가 있다는걸 비단벌체차를 타고 설명해주시는걸 듣고 알았거든요.

언덕을 올라야해서 아이들이 힘들어하긴 했지만 실제 석빙고를 보고 눈이 동그래졌어요.

가까이만 들어가도 서늘한 기운이 한가득했던 경주 석빙고

 

 

월성 내에 위치한 석빙고는 신라시대의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에 만든거라고 해요.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석빙고를 만든 것은 유리왕때 부터라고 해요.

 

멀리서 보면 무덤같은 느낌이었는데, 내부를 살펴보면 아치형 천장에 아래에 물길이 있었어요.

외부에서 보면 환기통이 있는데, 더운 공기가 위로 빠져나가게 설치되어 있더라구요.

내부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는데, 통풍이 잘 되는 돌이라고 합니다.

물길은 안쪽으로 기울어진 바닥을 통해 녹은 물이 배수구로 빠지게끔 설계.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여기서도 한번 느껴지네요.

 

 

월성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는데요.

적들의 침입으로부터 월성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 주변을 판 뒤 물을 채워넣은 시설이예요.

 

수원화성이나 공주 공산성에서도 해자를 볼 수 있는데

설명을 듣기 전에는 인공 수로 같은 느낌으로 보았던게 새롭게 느껴지더군요.

 

경주역사유적지구 하루종일 걸어다니며 볼 수 있는 곳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거닐기에는 힘든 부분도 있어서 가족자전거를 이용하는걸 추천해봅니다.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햇빛을 가려줄 무언가가 필요해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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